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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팠던 그시절 추억*

*배고팠던 그시절 추억*                                  
    

                                                                           어두운 밤 전봇대 희미한 가로등을 중심으로 동네아이 들은 모여 지나가는하루를 아쉬워 하고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내녀석 계집아이 할것없이 뒤엉켜 소리소리를 지르며 놀수있는 놀이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돌아보며 움직이는 아이를 찾아내는 놀이다.

그시절이 지나고 학교 졸업하자 기술배워야 먹고사는데 지장 없다고 어머니는 말씀 하였다. 人脈이 있어야 취직도 하던 시절이었다. 형님 학교동창 추천으로 직장이라고 들어가 배운덕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보면 어머니의 先見之明이
맞는 것 같다.


기술을 배운다는 것이 말과같이 쉬운 것은 아니다. 추운겨울이면 남들보다 한시간은 일찍 출근해서 조개탄불 난로를 피워 놓아야 한다. 연기가 꾸역꾸역 나는것을 다들어 마시며 입으로 불고 부채질해서 난로가 새빨갛게 달구어 지면 고참(기술자)들이 출근한다. 그때가 되면  내몰골은 엉망진창이 돼버린다. 한숨 돌릴라 치면 여기 저기서 불러댄다.

“꼬마야! 뻰지 가져와! 뿌라야 가져와! 정신없이 뛰어야 하고 때마춰 도시락 챙겨 난로불에 올려 놓아야 하고 밥이탓다고 때리는 고참 덜 데워졌다고 기압주는 고참 등살에 기술배울 시간은 없다.

눈치것 심부름하며 틈틈이 배우는 수밖에 없다. 오후에는 씻고갈 물을 드럼통에
가득부어 석유도치람프로 데워야 한다. 딲고갈 물배급을 하고 나면 또 한번 얻어터지기 일쑤다.

물대야가 일정하지가 않아서 똑같이 배급해도 넓쩍한 그릇에는 바닥에 깔리고
우묵한그릇은 듬뿍담기고 하다보니 불만투성이다.

결국에 돌아오는 것은 주먹뿐 이었다. 이런 수모를 참고 배워야 하는지 갈등을 많이 겪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집에 갈때마다 다시는 출근 안한다고 다짐을 하며 동일방직 앞길을 지나 집을 향해서 걸었다.


저녁밥상 머리에서 어머니께 직장에서 일과를 설명하고 내일부터 출근못하겠다고 투정부리는 막내를 어머니는 마음아프신 내색은 안하시며 조용히 타이르셨다.
“막내야! 참고 기술을 배워야해 기술만 배우면 돈도 많이받을수 있구”

“기술자되면 도시락도 데워주고 세숫물도 떠다 받쳐”
“우리 막내 쬐끔만 참으면 돼 에미말 알아듣지” 하시며 달래시고 했다.

밥을 허걱지걱 먹고나면
밥상 에서 떨어져 나와 시내외출 채비를서둘렀다.

머리를감고 뽀마드(포마드)로 머리를 단장하고 동지섯달 추운날도 빤스(팬티)에 양복바지 주름잡아 날세우고 구두는 침 퉤퉤 뱉아가며 반닥 반닥거리게 닥아 파리가 앉으면 낙성하게 딱은구두 차려신고 나서면 다리는 사시나무 떨듯 떨어대도 좋기만 하든 그런 향수와 멋이 있었다.


연백상회 앞을지나 한양의원 그리고 동아제분에서 구름다리 인천극장을 넘어 화평동 철굴다리를 지나면 동인천 평화다방 한쪽구석 테블에는 일찍부터 자리잡고
있던 친구들이 반긴다.

커피한잔에 프림 3스픈 설탕 3스픈 달콤한 커피을 한모금 마시고 뿜어대는 담배연기에 자욱한 실내가 아련한 멋을 풍겨준것 같다.

출입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오라는 손짓을 하고있다.
윗층(3층) 당구장에도 자욱한 담배연기속에 큇대를 대고 쓰리쿠숀을 치려 갖은폼을 다잡는녀석이 시야에 들어온다. 송아지 너더댓마리는 팔아먹은폼 으로 보인다.

그시절은 200다마는 쳐야 멋쟁이로 보였으니까 그정도 칠려면 송아지 4~5마리를 팔을 정도가 들어야 한다고 했다.

다시윗층(4층) 문을 열고 들어서니 조명이 어둡고 담배연기가 자욱해 열려진 문틈으로 피어 오르는 연기가 확연하다 시끄러운 음악에 취한 남여가 부등켜 않고 있는모습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펄씨스터 커피한잔이 분위기를 흔들어 놓고 있다.
커피한잔을 시켜놓고~   그대올때를 기다려봐도~  왠일인지 오지를 않아~ 내속을 태우는구려~  숨이 막힐 것 같아 음악감상실 문을 박차고 튀쳐 나왔다.


다방에서는 커피한잔 마시면 하루종일 죽치는녀석들도 있었고 엽차만 주문하던빈대들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오전에는 단골손님께 써비스 차원으로 모닝커피에 계란 노란자를 풀어주는 훈훈하고 구수한다방 문화가 있었다.

어제까지도 미소를달고 커피를 나르던 미쓰정 눈에띠지 않아 이상하다 했더니 손님과 눈이 맞아 살림차려
나갔다고 박마담언니 입에 거품물고 “죽일년 배신을 때려” 하며 독품은 살모사로변해 버린다.

통금 사이렌소리가 울리기 직전 다방과 당구장에서 빠져나온 젊은 또래들은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을 해야한다. 그런데 다마친 깽값이 없어 구두벗고 바지벗고 다름박질 하는녀석들의 꼴이 우습다. 헐덕대며 죽어라 달리다 보면 사이렌소리와 동시에 방문을 열고 두툼한 솜이불속을 파고들 수 있다. 옆자리에서 선잠을 자던 어머니가 가늘고 나직하게 말씀 하신다.

“내일 출근하려면 일찍 들어와 자야지” 하며 무거운 솜이불을 끌어 나를 덮어주시던 어머니셨다.

아침 출근길이 좋을리 없다 가기싫은 직장을 나가려니 15분거리를 30분 걸려 출근을 했다. 어머니의 간청을 배신할 수 없어 하루 하루 출근하며 세월이 지나간 만큼 기술을 배운 것이다. 이제 돌이켜봐도 어머니의 설득이 없었으면 때려치고 말았을 것이다.

소가 屠殺場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출근을 하였으니 말이다. 무수한 세월이 흐른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우리와는 너무도 다르다. 힘이드는 일은 하질 않는다. 하물며 얻어맞으며 기술를 배우려 하지도 않고 집안에 祖上 모시듯 대접을 해야 한다.


어머니는 기술만 배우면 대접을 받을수 있다고 했는데 현실은너무 다르다. 세월이 바뀌고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아랫사람 다루기가 기술배우는 것 보다
더 힘들다 야단을쳐도 안되고 먹을것이 있어도 위아래가 없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어디부터 다시 잡아나가야 할지 출발점을 찾을수가 없다. 냉수를 마셔도 위아래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세상살이는 너무 각박하고 따뜻한 情이 매말라 버렸다. 기술보다는 위아래를 아는 位階秩序를 알고 이웃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정(情)말이다. 배가고프고 얻어 맞으며 기술배우던 그시절 이웃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정을 나누던 그때가 좋았다.

그래도 직업 때문에 투덜도 댓지만 네식구 어렵게 밥먹고 살아온 지난세월이 꿈만 같다. 직장에선 工場長이란 위치에 올라와 있지만 그래도 배고파 기술배우던 그때가 그리웠다. 얻어터지면서 기술배우고 보리밥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난로불에 구워먹던 구수한밥도 생각난다. 고참 세숫물 데운다고 얼음물떠다 퍼부어 끓어 배급하던 꼬마시절이 떠 오른다. 그렇게 높고 부럽던 자리였는데 지난 그시절이 그리운 까닭은 어려운때지만 정이 물씬 풍기던시절 이라 좋았던 것 같다.

직장에서 일년에 한번씩 잘되게 해달라고 고사를 드리곤 했다. 큰가마솥에 물을 펄펄끓여 돼지잡으면 디쳐 털 뽑는일이 우리들 몫이었다. 그날은 직장동네 잔치판이 벌어지며 돼지고기 잔치가 벌어지는 훈훈한 정이 있었다. 막걸리잔을 기우리며 어려움을 극복하며 함께 살아가는 미덕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여 도시락을 먹을때도 보리차 주전자를 갖다놓고 웃사람들이 수저들고 난후에 도시락 뚜껑을 열었고 잔업을 하게되면 자장면이나 우동을 먹게되면
웃사람 이나 고참들이 들고난후에 퉁퉁불어 엉겨붙은 자장면을 먹으면서도 불만은 없었다. 웃사람의 예의로 생각을 하고 지내온 것이다.


내자식 귀엽다 하기전에 正道는 알며 귀여워도 하고 사랑도 베풀었으면 한다. 어린아이들 키우는 것을 보며 한숨이 나올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귀여운녀석 일수록 매를 들라는 옛선조들의 말의 뜻을 알 것같다.
天方地軸이 되는 것은 부모 잘못이라 생각된다.  진정한 사랑의 매를 들어야 할때가 된 것같다. 모든 것을 돌이켜 볼때   먹고살기에 급급해 산업에 박차를 가하다 보니 인간적인 면은 온데간데 없고 인간미가 실종된 상태가 되었다. 이제라도 늦었다고 탄식만을 하지말고 늦었다 생각 들때가 시작 할때라고 人間의 正道는 확실히 집고 넘어야할 우리모두의 숙제로 남은 것이다.

추워 떨면서도 멋부린다고 내복 안입던 젊은이의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내복을 모르고 올겨울을 지내고 있다. 구수하며 달콤한 그때 커피향기가 그리워질 때면 내손으로 커피를 타며 모락모락 오르는 커피향에 취해 버리고 만다.

귓가에 들려오는 펄씨스터의 “커피 한잔” 이 들려오는가 하면... 디스코텍에서 광란스럽게 울리던 “울리불리” 팔다리를 휘저으며 추어대던 디스코 거리에 울려퍼지던 톰죤스의 “딜라일라” 번역곡을 불러주던 조영남의 열창 모두가 활동사진이 필림을 풀어내듯이 누에가 입에서 실타래를 풀어내듯 그시절의 영상이 돌아가고 있다.

맛있는 음식이 없다고들 하는 시대에 살고있다. 흔히들 배부른 소리라고 한다. 분명한 것은 돈만 있으면 살기좋은 대한민국이다.

꿀꿀이죽 이 맛있던시절 수제비가 맛있던 그때 밀가루범벅 막걸리로 만든 술빵 니들이 그맛을 알어?


학교앞 찐빵집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따끈한 찐빵을 입속에 넣으면서

앗! 뜨거워!

이맛을 누가 알어 그래서 배고팠던 그시절이  그리운가 보다 잘 먹으면 건강하다고 하질 않는가 지금도 잘먹고 잘 싸는 것을 보면 건강 한것 같다.

우리모두 건강하게 한평생 백년을 기약해 보자구~
그때 그 친구들 한번 만나서 신포시장  튀김가루 뿌려주던 우동 한번 먹으며 지나간 추억을 그려 보면좋겠다.

*현규할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