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이들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살게 된데는 선배이자 아버지 세대에 피나는 노력과 땀의
결실이라 생각한다.
한국전쟁 후에 우리에 삶은 거지에 밥 얻어 먹을 깡통이 필요한 시대 였다.
국가에서 정부가 무슨일을 할려 해도 돈이 없고 자본이 없어서 못하던 시절 이었다.
자가용 마이카 시대는 꿈같은 이야기에 잘사는 미국 이나 영국 같은 강대국의 이야기로만 들려 왔던때다.
그러나 우리 선배들은 서독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나가 돈을 벌어 조국으로 보냈으며
우리의 형들은 월남전에 참가해서 목숨을 잃고 피를 흘려 돈을 벌어 조국으로 보냈다.
우리는 중동 건설 현장에서 열사의 땅 죽음의 모래바람과 땀을 흘리며 돈을 벌어 조국으로 보낸 결과 이만큼 밥걱정 안하고 자가용 타고 다니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우리보다 많이 배운 세대들이라 대한민국을 잘 끌고 나가겠지만 선배들의 고생 끝에 이룬 잘사는 나라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한번 살아 보고싶은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
어린딸과 아내를 두고 열사의 나라 사우디 아라비아로 떠날때의 심정은 어느 누구도 모른다.
리야드 국제공항 건설 현장 에서의 1년반 그리고 타이프 청소년 스포츠쎈타 건설 현장에서의 1년은 벌써 36년전 추억이 되여 버렸다.
2018년 5월26일 택균이 생각
*열사의나라*
글.사진:신택균
81년12월3일 아내의손길은 김장준비에 바쁠시각 어둠이 깔리기 직전 오후4시경 중동취업 통지를 우편(전보)으로 받았다 아내는 일손을 멈추고 넉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주시하며 할말을 잃은채 말문을 열지 못했다.
빨리 취업 되었으면 하고 바라던일이 잘되였는데 막상 출국통지를 받아드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음날 12월4일 (주)한일개발 회사에 미비된 구비서류제출후 내일 출국자 소집후 집으로 돌아 가는길은 비가 주룩 주룩 내렸다 저녁은 잠실형님댁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잠자리에 들어도 잠은안오고 아내에게 무슨말을 해주어야 할지 말문이 열리질 않는다
이리뒤적 저리뒤적 거리다 밤을 꼬박 새운꼴이 되었다
날이 밝으며 태양은 하루의 시작을 위해 우리집 창가에도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를 떠나야 하는날 대한민국을 벗어나는 날이 되였다 12월5일 태양은밝게 떠올랐다
회사에서 김포공항을 향하는 길이 오늘은 새롭게 보였다 매일같이 오고가던 길인데 오늘따라 영원히 떠나는 느낌이 들며 아쉽고 미련이 남는것 같다.
공항에는 아내와 막 돎지난 딸과 장모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넉살좋게 있는말 없는말 섞어가며 아내를 달래주고 이별을 한다면 좋으련만 고지식 하고 주변머리 없어 목구멍에서 안나오는 소름돋는 말은 못하고 한다고 한마디 한것이....“여보! 건강하고 수진이와 잘지내” 하고 한마디 남기고 떠난 것을 540일을 두고 두고 후회 했었다.
출국자 대기줄에 서서 아내를 보며 고맙다는 생각이 결혼후 처음으로 들었고 가슴 아펐다
돎지난 수진이는 아내등에 업혀 아빠가 떠나는것도 모르고 마냥 웃으며 재롱을 부리고 있다
대한항공 DC-10기는 방콕을 경유 해서 지루한 비행끝에 열사의땅 사우디 다란공항에 바퀴를 내리고 무사히 착륙했다 새벽공기가 후덕지근한 땅을 밟으며 살아갈것 이라고 이를 악물고 마음깊이 다짐을 했다
다란에서 리야드까지는 고속도로로 8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동이트기전 이른새벽 일행을 실은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차창가로 보이는 시뻘건 불기둥이 보였다 油田지대에서 석유를 빼기전 발생하는 GAS를 태우는 불기둥 이라고 운전기사가 설명을 해주었다
날이 밝으며 차창가에 들어오는 사막 그리고 불모지 수만리 고속도로는 한국산업전사 들의
피땀이 얼룩진 고속도로공사 였다고 한다 우리선배 들이 건설한 고속도로를 우리가 달리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사막뿐 너덧댓시간 달린후에 마을이 나왔다
버스에는 기름을 채우고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리야드 PF-21현장으로 달렸다
휴게소가 있고 상가들이 밀집된 마을이 오아시스 라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아시스는 야자수옆에 낙타가 있고 샘이있는곳 으로 알았는데 물이나는 지대에 사람이 모여살며 형성된 마을 인것같다.
PF-21현장은 국제공항건설(INT,RIYADH AIR PORT)을 미국 백텔 건설회사로 부터부분 하청받아 작업을 하였다 한일개발에서 건설하는 것은 관제탑(CONTROL TOWER) 모스큐
(MOSQUE) 대형주차장(PARKING) 국제건설공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무더위를 이기는 것이 힘들었고 한번도 안해본 노가다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미장, 목수, 도비, 페인트, 콘크리트, 닥치는대로 했다 국내에서는 구경도 못했던 장비가 좋았다 콘크리트 작업에는 펌프카가 동원 되였다 역시 국제 노가다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지하1층~지상21층 콘트롤 타워(관제탑)가 우리땀으로 이뤄놓은 位相이다 지금 리야드국제공항을 드나드는 웅장한 비행기들의 이착륙을 도와주고 있을 것이다
공사중 대형참사가 일어 났다 동료1명 방글라데시 2명이 참변을 당했다 타워크레인이 조작실수로 넘어가는 불상사로 한동안 침통에 빠지기도 했다 故人의 명복을 빌고 넘어가야 할것같다 그런세월속에 545일이 되였다 그립고 가고 싶어하던 조국으로 돌아갈날이 닥아왔다
1983년6월5일 김포에 떨어질 것이다 전날 18개월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이 알콜없는 맥주 둥근탁자에 올려놓고 석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해준 갑돌이(김갑성:전남장흥)와 몇몇 동료들과 시원한 캔맥주를 높이들고 고국에서 만날 것을 약속 하며 들으켰다.....크윽~
귀국길은 숙소에서 새벽4시반에 출발 하느라고 꿈속을 헤메고 있는 동료들에게 “안녕” 이라는 말한마디 못하고 떠나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쥬베일 알코바를 거쳐 다란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대한항공DC-10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누가 알까? 막상 떠나려니 SAUDI ARABIA 뭔가 아쉽다
잘있거라 열사의나라 사우디 아라비아 여! 機內에서 545일간의 여정을 눈을 감고 되돌려 보았다 몸이 아파 숙소에서 꼼짝못하고 누어 있을때 갑돌이가 식판에 밥을 타다 주던일이
눈시울을 적시게 하고 있을때 기내방송이 들려왔다 잠시후에 착륙을 한다고 안전벨트를 매란다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곳이 구로동 상공 같았다 곧 김포공항에 내려 앉을 것이다
中東國際노가다 경험으로 무엇이든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느곳에 갔다놓아도 살아갈 자신이 있다는 것을 얻은 것이 큰수확이 아닌가 한다
입국자 통로를 빠져 나왔다
아내와 딸 수진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너무 반가웠고 왈컥 끌어안었다
아내뒤에 돎지난 수연이가 수집어 엄마 치마폭 으로 얼굴을 파묻어 버린다
수연이는 아내 몸속에 태아로 있을때 헤어진후 세상밖에선 오늘 아빠와 처음상면하는 것이다
그때 수진이는 칭다오(청도)에 출장중 이고 수연이는 나이팅켈 간호사로 봉사를 한다
그곳을 떠나며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장담을 했지만 6개월후에 다시 사우디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줄 누구도 몰랐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내와함께 우리의 피와땀이 배여있는곳 내숨결이 살아 숨쉬는 현장을 가보련다 꼭 살아서 가보려한다.
2005년3월21일 신 택균 씀. (사진배경: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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