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학창시절을 찾아서...*
단기 4282년(서기 1949년)2월 황해도에서 출생 하였다.
단기 4284년 1.4 후퇴때 우여곡절 끝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인천에 도착. 만석동 괭이부리 마을에서
단기 4289년 (서기 1956년) 에 인천축현국민(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6년의 학교생활은 피난민 어린이들은 허구한날 교단에 불러세우거나 집에가서 육성회비 갖어오던지 부모님 모셔 오라고
돌려 보냈다. 집에 가봐야 뻔하기에 10여명의 어린이 들은 학교에서 나오면 자유공원 맥아더장군 동상 앞에 쪼구려 앉고
시간을 보내다 수업이 끝났을 시간에 텅빈 교실에서 책보나 책가방 찾아메고 집으로 왔던 기억이 희미하게 머리속을 스쳐 간다.
그리고 만석동에서 동인천 (인현동)에 있는 학교 까지는 어린이 에게는 먼 거리였다.
겨울철에는 손이 얼어 터져 손을 호호 불어대며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다녀서 서기1962년 2월(제15회) 축현국민(초등)학교를 졸업 했다.
내가 초등학교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4학년7반 단체사진 한장 뿐이다.
동인천(인현동)에 있던 학교가 언젠가 연수구(옥련동)로 이전을 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졸업한지 60년만에 모교를
방문을 했다. 어린시절 희미한 기억을 찾아 모교에 남아있을 흔적을 찾아 나섰다.
행정실에서 "졸업증명서" 와 "생활기록부" 를 받았다.
"졸업 앨범" 이라도 봤으면 했지만 여의치 않아 내년에 다시 한번 방문해서 보기로 했다.
생활기록부에 기록을 보니 초등학교 당시 담임선생님 들이다.
내 기억에는희미한 추억일뿐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지질 않는다.
4학년 때 박수희 선생님은 사진이 있어 그나마 기억을 되살릴수 있었다. 우리반 친구들과 우리 선생님은 할아버지 같다고
했던 기억이 어렴프시 되살아 난다.
*1학년담임 박정자 선생님
*2학년담임 윤재중 선생님
*3학년담임 이현실 선생님
*4학년담임 박수희 선생님
*5학년담임 민병호 선생님
*6학년담임. ?
집으로 돌아오며 "생활기록부"를 보면서 가슴이 저리고 아파왔다.
보호자. 아버지( 사망) 어머니(趙大寅)
직업(부두 노동)
학력(한글 해득)
종교(없음)
나이(39)
어머니의 삶과 일생이 그려진다.
2022년8월19일. 택균이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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