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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인생사(삶)

*生死의 갯벌 길*

 

生死의 갯벌 길

 

195114일 피난길이 시작 됐다. 남쪽으로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피난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내려갔다. 아버지는 남쪽으로 장사를 다녀 남쪽 충청도 서산에 머물고 있고 어머니께서는 두 아들 중에 막내 2살짜리는 들쳐 업고 7살짜리는 배낭 짐을 지우고 고향 집을 나서며 피난길 대열을 따라 나섰다.

 

연안에서 갯벌을 통과 하면 남쪽땅 이지만 생사가 달린 갯벌길 이었다. 갯벌 부근 울창한 숲에서 해가 질때 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며 칠흑같이 어두운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바닷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 때가 적기라고 하셨다.

어둠속 갯벌에 바닷물이 빠졌을 때 경비초소 경비병 모르게 갯벌을 건너가야 하는데 우리같이 아버지 도 없이 갓난아이 들쳐 업고 피난 가는 사람을 일행들이 반기질 않는다는 것이다.

 

민첩하게 행동해야 하며 빠른시간에 갯벌을 걸어 빠져 나가지 못할경우 바닷물이 들어차면 물귀신이 되거나 갯벌에서 갓난애가 울기라도 하면 경비병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개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이유로 갓난애를 업은사람과 동행 하는 것을 싫어들 한다니 아버지도 없이 갓난 나를 업고 가는 어머니가 눈치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워지고 바닷물이 빠진 황해도 연안 바다 갯벌 피난민 행렬은 갯벌에 들어서자 성큼성큼 달려가는데 등에 나를 업고 한 손에 형님을 잡고 갯벌에 빠진발을 내딛고 가니 일행들은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사방은 어둠속 바다 한가운데서 갈방질방 하고 있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콱 막혀온다.

 

 어머니는 말하셨다.

"이젠 우리 세식구 꼼짝 없이 죽었구나" 하며 삶을 포기하려 할 때 니 형이 "어머니 머리에 이고 있는 보따리 내 배낭 위에 올려 주고 빨리 가요" 하는 소리에 어머니는 정신을 차리고 갯벌을 겨우 빠져나와 뚝방에 올라서서 바다를 보았더니 갯벌은 보이지 않고 바닷물이 차버렸다며 조금만 늦었으면 우리 세 식구는 물귀신이 되었을 거라고 하셨다.

 

전쟁이 끝나면 금방 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갈줄 알고 피난길에 올랐던 실향민들은 70년의 세월이 흘렸지만 철의장막은 열리지 않고 열릴 생각을 안하고 있다.

 

우리 텃밭 옆에 강화사람 1944년 생 형님이 있다.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나와 강화에서 삶을 다한 사람이 황해도 연백에서 1.4후퇴 때 피난 온 이야기를 들어 보니 황해도 연안에서 바닷물 빠졌을때 갯벌을 걸어 강화도 선수리로 피난 왔다고 한다. 7살때 어머니 등에 업혀 소 한마리 고삐를 쥐고 넘어 와서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넘어 왔다며 자랑 하듯 한다.

 

그걸 보면 우리 형님은 7살에 배낭을 메고 위기에는 어머니 짐까지 올려 놓으라 했다니 대단한 형님을 둔 것 같다. 어머니에게 들어온 피난길 하고 비슷했다. 지도에서 확인해 보았더니 황해도 연안에서 강화 볼음도는 가까운 거리 였다.

 

몇 년 전에 강화나들길 13코스 "볼음도길" (13.6km)을 아내와 함께 걸었던 일이 있다. 강화나들길을 걸으면 관광객 들이 하는 갯벌체험을 보았다. 경운기를 타고 까마득한 갯벌길을 달리는 경운기 행렬을 보았다. 멀리 나가서 바지락 잡는 체험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길은 어머니가 나를 업고 형님 손을 잡고 피난온 생사의 갯벌길 같이 느껴졌고 그 길이 어머니가 나를 들쳐업고 걸어온 갯벌이 분명한 것 같았다.

 

인천에도 황해도 실향민이 많이 살고 있다. 80대 선배가 두분이 있다. 한분은 전쟁때 낙동강 전투를 하며 백선엽 장군 소속부대 백골부대 출신이며 반공정신과 멸공정신이 투철한 분이다.

황해도 연안은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남한땅 이었다고 한다. 옹진군에 속한 남한땅 이라 연안에서 볼음도는 바닷물이 빠지면 걸어 다녔다고 한다.

 

황해도 연안에서 강화 볼음도는 거리도 가깝고 바닷물이 빠지면 걸어서 다녔으며 피난민 들이 걸어서 많이 넘어 왔다고 한다. 나는 피난길 이야기는 어머니를 통해서 여러차례 들었지만 강화 볼음도를 거쳐 강화 선수리 부두를 통해 배를 타고 들어 오는길은 전혀 몰랐다.

강화도에서 인천 만석동 해방촌 그리고 지금의 만석부두 (괭이부리)로 피난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고 한다.

 

70년의 긴 세월은 모든 사람들이 기다려주질 못하고 하늘나라로 많은 분들이 떠났다. 나는 생각 한다. 우리 조상님들 머리가 좋고 영특한 사람이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타는 것을 알았다.

 

일본한테 식민지생활 중국과 몽골에게 당했던 수모를 과거의 역사가 부끄럽다. 한민족 통일해서 잘살아야 하는데 우리민족은 못 이루고 있다. 공산주의자 다수의 인간들 때문에 우린 분단국가로 원수처럼 총 칼을 앞세우고 대치상태로 있다.

 

하루 빨리 통일의 물결이 왔으면 한다. 세계가 하나 되여 평화로운 날이 되길 바래본다.

비들기가 창공을 훨훨 날을 날이 오길 기다릴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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