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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제주올레길과 삼다도의 恨*

*✤제주의 아름다움속 깊이 한(恨)✤

 

남쪽 아름다운 섬 삼다도.

바람, , 여자, 많다는 섬 삼다도 탐라국.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에 언제 부터인가 피바람이 불어 닥치며 삶이 척박하고 숨을 죽이고

살아온 세월 속에 하루방 할멍 들의 한()서려 있다.

20174월 정년퇴직 후 제주도에 긴 여행을 떠났다. 직장생활을 하며 마음속에 담았던

꿈만 같은 제주도에 들어가 동쪽 성산 신양리 섭지코지에 둥지를 틀었다.

새벽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면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며

日出과 함께 하루가 시작되던 아름다운 곳 섭지코지 다.

섭지코지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고 넘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주자치구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섭지코지*

섭지코지의 섭지는 재사(才士)가 많이 배출되는 지세라는 의미와 좁은 땅을 뜻하는 협지(狹地)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코지는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땅을 가리키는 곶() 또는 갑()의 제주어이다.

섭지코지 남동쪽 해안의 선돌바위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서 목욕을 하던 선녀를 본 용왕의 막내아들이

용왕에게 선녀와의 혼인을 간청하였다. 용왕은 백일 후 혼인을 약속하였다.

백일이 되던 날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고 파도가 높아져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용왕으로부터

네 정성이 부족하여 하늘이 혼인을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은 막내아들은 슬픔에 잠겨 이곳에서 선 채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봄에는 유채꽃으로, 가을에는 억새로 물드는 섭지코지는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수려한 해안경관을 자랑하는

제주도의 명소이다.

여명의눈동자(19911992)·

이재수의난(1999)·

단적비연수(2000)·

올인(2003) 등 영화와 TV드라마의 단골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섭지코지에는 1973년에 제주도 기념물 제23-2호로 지정된 협자연대(俠子煙臺)가 남아 있다. 원형을 비교적

잘 보전하고 있는 협자연대는 북쪽의 오소포연대와 성산봉수대, 서쪽의 말등포연대와 불과 연기로 교신했던 곳이다.

연대 상부에는 직경 4.2m의 화덕이 남아 있다.

 

제주 올레길 에 대한 것을 알아보고 넘어 가자.

산디아고(santiago)는 성인 야고보(saint james)의 스페인식 이름이다.

성인 유해가 모셔진 대성당까지 걸어가는 산티아고 순례의 역사는 천년이 넘는다.

일반인 들이 자기 성찰을 위한 도보 여행길로도 관심을 갖게 된 길이다.

우리는 제주 올레길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길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사실 한 개인의

노력과 열정의 결과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올레는 주거 형태의 특징적인 구조로 볼 수 있으며, 큰 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어 이다. 제주의 거친 바람으로부터 가옥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 주변으로

돌담을 쌓았다. 하지만 돌담의 입구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지를 못하기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좁은 골목을 만들었다.

돌담은 제주에 많은 현무암을 쌓아 만들었다.

우리나라 제주 올레는 서명숙 개인의 혜안이 제주 섬의 가치를 차타고 다니던 관광지에서

두 발로 걸으며 즐기는 도보여행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200791코스, 시흥리~광치기 해변 까지 개장하고 해마다 4~5개 코스를 개장 했다.

201211월 마지막 21코스까지 섬 전체를 한바퀴 돌수 있도록 연결이 되었다.

우도(1-1) 가파도(10-1) 추자도(18-1) 3개 코스와 고근산(7-1) 저지리~오설록(14-1)

김영갑갤러리(3-B) 고내봉 내륙(15-B) 코스를 합쳐 28(428km)코스가 됐다.

 

제주 올레 28개코스를 완주하고 한라산둘레길 전 코스를 완주하고 오름을 찾아 나섰다.

오름에 매력을 느끼며 하루에 한 개오름 에서 많게는 3개 오름을 탐방 하는 재미에 빠졌다.

오름을 알게 되면서 처음 찾은 오름은 동쪽 구좌 용눈이오름 이라고 생각 된다.

백록담, 사라오름. 다랑쇠오름. 새별오름. 노꼬메오름...180개 오름을 탐방 했지만 새끼오름

까지 한다면 200개 이상 오름을 대중교통으로 발품을 팔아 탐방을 했다.

 

20174월 거슨새미오름, 안돌오름, 밧돌오름을 찾아 나섰다.

버스에서 내려 버스정류장 표지에서 거슨새미오름 아래 이승만대통령 별장이라고

표기 돼 있었다. 오름 3곳을 탐방하고 나서 일행들과 이승만별장을 가 보기로 했다.

맞은편 길건너 송당 민오름에 이승만별장이 있었다.

관리를 안 해서 쓰레기가 산적해 우리 일행들은 실망을 했다.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별장 이었으며 문화재 인데 방치 했다는 생각에 제주도청 문화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듯 관리 잘 해 달라고 건의를 했다.

담당자 역시 관리 소홀한 점을 인정 하며 죄송하다고 머리를 쪼아리는 시늉을 했다.

그 후에 제주도에 거주하는 지인으로부터 이승만별장 관리를 못하는 이유를 대충 들어

지금은 이해가 됐다. 제주 4.3 사건에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았다.

 

201711월 다시 찾은 버스정류장 표기에는 거슨새미오름“ ”안돌오름“ ”밧돌오름

민오름이라고 표지 되고 이승만대통령 별장이라는 표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통령 이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1948년 이면 내가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기 전 해 이기도 하다. 43일 새벽2

한라산 곳곳에 나타난 횃불을 신호탄으로 남로당 무장대 수백 명이 봉기....

뒤이어 진압이란 미명하에 무자비하고 무시무시한 광풍이 섬 전체에 휘몰아쳤다.

19496월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가 사살 되면서 광풍은 일단락되었다.

6.25 전쟁이 터지면서 좌익 의심자로 지목된 다수가 예비 검속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집단 학살 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도민 2~3만여 명이 희생 된 것이 4.3 사건의 결과란다.

 

제주 올레 28개 코스 곳곳에 4.3 유적지 있는 것을 보고 무심히 걸었다.

2022년 제주 올레를 다시 걸었다. 28개 코스중 추자도(18-1)코스만을 남겨 놓았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하루방 할멍의 누가 어떻게 을 풀어 주어야 할까 ?

육지껏하는 제주 할멍 하루방을 보았다. 이유를 이젠 알 것 같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름답던 삼다도 섬이 언제부터 육지껏에 의해 광풍이 일고

피바람이 휘몰아치며 학살의 현장이 되어버렸다.

섬을 빚은 설문대할망 설화와 탐라국 시조 고양부 씨 신화와 삼별초와 묵호의 난의 난으로

이어지고 아프고 처참했던 역사, 무명천할머니와 순이 삼촌으로 대변되는 4.3 사건의 여러

상흔들 이런 변방의 아픈 역사들이 제주 올레와 주변 곳곳에 산재 되어 있다.

아름다운 경관에 가려지다 보니 무심코 지나는 이들에게 보이질 않는다.

(제주올레 인문여행 중에)

 

*제주 올레 28개코스와 거리*

1코스 시흥리~광치기해변 15.1km 성산일출봉
1-1코스 우도 11.3km  
2코스 광치기해변~온평포구 15.6km  
3코스(A) 온평포구~표선 해수욕장 20.9km 김영갑갤러리
3코스(B) 온평포구~표선 해수욕장 14.6km 해안길
4코스 표선 해수욕장~남원포구 19km  
5코스 남원포구~쇠소깍 13.4km  
6코스 쇠소깍~제주올레여행자센터 11km 제재기오름,
7코스 제주올레여행자센터~월평포구 17.6km  
7-1코스 서귀포버스터미널~제주올레여행자센터 15.7km 고근산. 엉또폭포,
8코스 월평포구~대평포구 19.6km  
9코스 대평포구~화순금모래해수욕장 6km 군산
10코스 화순금모래해수욕장~모슬포 15.6km  
10-1코스 가파도 4.2km  
11코스 모슬포~무릉외가집 17.3km 신창곶자왈
12코스 무릉외가집~용수 17.5km 차귀도
13코스 용수~저지리 15.9km  
14코스 저지리~한림항 19.1km 비양도
14-1코스 저지리~서광(오설록) 9.3km  
15코스(A) 한림항~고내포구(내륙) 16.5km 고내오름,
15코스(B) 한림항~고내포구(해안) 13km  
16코스 고내포구~광령 15.8km  
17코스 광령~제주 원도심 18.1km  
18코스 제주 원도심~조천 19.8km 동문시장,
18-1코스 추자도 18km  
19코스 조천~김녕 19.4km  
20코스 김녕~하도(해녀박물관) 17.6km  
21코스 해녀박물관(하도)~종달바당 11.3km 지미오름,
(,28개코스) (,428km)

  *제주 올레 1코스부터 걸으며 둘러보기로 했다.

1코스는 역시 성산일출봉 이다. 제주도 하면 한라산 백록담이나 성산일출봉을 말한다.

처음 만나는 두산봉 오름이다. 정상에 올라서자 확트인 시야가 마음속을 열어준다.

우측에는 성산일출봉이 좌측에는 우도와 지미오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성산일출봉 아래 일본군 갱도진지가 여기저기 보인다. 한반도 남쪽에 외딴섬 제주도가

일본열도를 보호 하기위한 최후의 방패막이가 되어 태평양전쟁의 흔적들 이었다.

광치기해변 1코스 끝나는 지점 터진목 4.3 유적지 표기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1945년 해방 직전에 제주도 인구가 22~23만명 정도로 추정 된다.

해방으로 징병과 징용으로 끌려갔던 제주도 사람이 돌아와 30만명 정도 였다고 한다.

그리고 발생한 4.3 사건의 비극으로 2~3만 명의 목숨이 희생 되었다.

터진목 비극의 현장 앞 성산일출봉은 그 때나 지금이나 웅장한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품어

주고 있다. 광치기해변 에서 1코스를 마치고 2코스 시작을 하였다.

 

   *제주올레 1-1코스 우도 성산항에나 종달리항 에서도 배로 15~20분 거리다.

설문대 할망의 전설이 있는 섬 우도 제주도을 빚어 만들고 소변줄기로 종달리에서

떨어져 우도가 됐다는 설이 있다. 쇠머리오름 우도봉에 등대에 설문대할망 석상이 서있다.

홍조단괴해변, 검멀레해변, 둘레는 17km 하루 여행코스를 좋다.

특산품 으로 우도땅콩으로 땅콩막걸리 땅콩아이스크림 등 있다.

 

   *제주올레 2코스는 광치기해변 에서 온평 포구까지 15.6km 이다.

태초 이래의 섬에 어느 순간에 인간이 나타났다. 고씨 양씨 부씨 세 사람이 제주에

태어난 것이다. 그들이 시작된 곳은 삼성혈 주변이라고 한다.

하늘이 내린 삼신인 세공주가 짝을 이뤄 동굴에서 살림이 시작됐다.

이들은 곡식을 뿌려 풍성한 수확으로 날로 부유해졌고 3성 씨족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며

대대손손 번창했다. 작은 섬이지만 인구가 늘어 훗날 탐라국으로 가는 기본 틀이 만들어져

갔다.

오조포구를 돌아 나와 대수산봉 오름에 오른다.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성산앞바다 위에

떠있는 성산일출봉과 내가 8개월 지낸 섭지코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면 혼인지“(婚姻池) 고양부 3씨 이후 제주 섬사람들을 태동시킨 혼인지 이다.

혼인이 이루어진 연못이다.

어느 날 고양부 3씨와 벽랑공주 3인이 목욕재개 하고 혼인을 맺은 곳이 혼인지다.

온평리 성산수양관 장수환 목사 夫婦 만나 제주1년 여행에 물심양면 도움을 주었던

두 분께 고마움을 전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해마다 10월이면 혼인지 축제행사가 열린다. 온평포구 에서 2코스가 마무리 된다.

 

   *제주올레 3코스해안코스(14.6km) 내륙코스(20.9km)로 나누워 걷게 되어 있다.

중산간 오름에는 찾는 사람이 없었다. 오름에는 밭농사를 지며 한여름 땀을 식히며

바람이라도 맞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오름에 오르는 것이 전부였다. 내륙코스를 걷다

보면 통오름을 지나 독자봉 오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성산일출봉 과 섭지코지가

1코스 두산봉 에서 본 것과는 사믓 다른 느낌으로 닥아 온다.

삼달리 밭길을 지나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도착했다. 현재 이곳은 폐교가 된채 잡초만

무성했던 초등학교 건물이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갤러리 개관을 준비 할 때

김영갑 작가는 시한부 3년 선고 받은 상태였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을 놓고 40대 중반에 루게릭병환자였다.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사춘기 때 사진찍기 와 사랑에 빠졌다.

제주와는1982년 처음 방문 때 자연에 매료돼 얼마 후 제주에 정착했다.

제주의 바람과 돌 바다와 파도 중산간 초원과 오름들 사진 화폭에 하나 둘 담았다.

내륙코스 멀리 푸른 하늘과 표선 해피치 해수욕장이 종착점 이다.

 

해안코스는 온평포구를 떠나 연듸모루 숲길 지나 신산환해장성에 도착했다.

신산리 환해장성

고려 원종11(1270) 김수, 고여림이 삼별초의 입도를 저지하기 위하여 해안선 300여리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김수, 고여림이 제주에서 생존한 기간(12709월 입도, 11월 삼별초 이문경

명월포로 상륙, 금덕전투에서 김수 전사, 송담천전투에서 고여림 전사)으로 보면

그 때 시작은 했다 해도 완성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조선시대 헌종11(1845) 겨울

권직 목사가 도민을 총동원하여 환해장성을 쌓았다고 하니 현존하는 환해장성은

이 때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온평리-신산리 부근 해안에 남아 있는 것은 약 2Km이며, 현재 온평리 환해장성에 보이는

석곽은 전경초소에서 경계근무용으로 시설한 것으로 보인다.

신산리 환해장성은 현재 남아 있는 길이가 600m이나 극히 일부가 복원되어 있는 반면

관광객을 위해서인지 심각하게 변형되어 있는 상태며 제주의 만리장성 이라고도 한다.

환해장성 10곳이 문화재로 등록 되어 있다.

온평 환해장성 2.120m (성산읍) 신산 환해장성 600m (성산읍)
애월 환해장성 360m (애월읍) 화북 곤을동 환해장성 140m (화북1)
화북 별도 환해장성 620m (화북1) 삼양 환해장성 280m (삼양3)
북촌 환해장성 250m (조천읍) 동복 환해장성 150m (구좌읍)
행원 환해장성 310m (구좌읍) 한동 환해장성 290m (구좌읍)

신풍 신천 바다목장을 지나 배고픈 다리를 건너 하천리 쉼터에서 점심 도시락을 펼쳐 놓고

먹는 점심은 궁궐 수라상 맛이 비할바가 아니다. 바람과 파도치는 물결 소리가 우리를

신선으로 만들어 놓는다. 다시 걸어 표선 해비치 해수욕장 바지를 걷어 올리고 손에 등산화

들고 수정 같은 물속을 걸었다, 더위는 싹 날아가 버리고 3코스 종착점에 도착했다.

 

   *제주올레 4코스는 표선 해비치해수욕장에서 남원포구 까지 19km 이다.

바닷가 해안을 끼고 걷는 올레코스로 보면 된다. 친환경적인 해병대길이 깔끔하고 정리된 것 같고 토산 산책로

알토산 고팡 중간스탬프 을 지나게 된다. 토산에 빈집이 매물로 나와 있어

갔던 일 이 있다. 텃밭 정도의 마당과 스레이트 빈집은 전설따라 삼천리에 등장하는

폐가였다. 이번에 지나며 보았더니 5년전 모습은 변함없이 폐가는 주저앉기 직전에

우리를 만난 것 같다.

 

 제주 열녀 1호 고려 정씨비가 올레길 인근 한남리에 열녀비 가있다.

고려때 석곡리보개의 아내였다. 합적의 난 때 그 남편이 죽었다.

정씨는 나이도 어리고 자식도 없으며 얼굴과 자태가 고와 안무사와

군관들이 강제로 아내를 만들려고 했지만 정씨는 스스로 죽기를 각오

하고 칼을 뽑아 목을 베려하자 그들은 아내로 만들 수가 없었다.

정씨는 늙어 죽을 때 까지 시집을 가지 않았다.

 

제주는 몽골족에 100여년을 속박에서 살았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25.6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몽골군 토벌에 성공한다. 몽골군은 범섬에서 마지막 항전을 했지만 최영 장군

토벌대에 완전히 몽골족의 마지막을 알렸다. 올레길을 걷는 길가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국 꽃이 걷는 이의 발길을 가볍게 해준다.

몽골인 묵호들은 100년을 제주에서 지배세력으로 군림해서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100년 동안 탐라에 들어와 섬 여인들과 혼인을 해서 2, 3, 뿌리를 내렸다.

탐라-몽골 혼혈인 들이 많이 늘어나 있었다.

증기스칸이 세력을 넓히던 세력이 아들에 이어 세력이 약화 되면서 최영 장군

토벌대에 몽골족 묵호는 무너져 버렸다. 묵호를 도운 자. 몽골인의 피가 섞이거나

변발을 한 자 는 남녀노소 가림 없이 죽임을 당했다.

650년전 한반도 변방 섬에서 일어난 묵호의 난기록이 역시 없다

탐라인의 절반이 묵호의 난으로 죽어나가는 피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정씨의 열녀비는 그로부터 400년 뒤에 순조 34년에 세운 것 이라고 한다.

고려 최영 장군의 토벌대가 묵호의 난을 진압하고 떠나자 제주는 온 섬

한통속으로 묶어 버리곤 무자비하게 살상해 버린 것이다.

4.3 사건 때 제주는 빨갱이 섬이라고 했던 정부의 인식과 비슷한 것 같다.

태흥리 벌포연대를 지나 해안길 야자수 나무가 남쪽을 기억하게 만든다.

걷다보니 남원포구 5코스 스탬프 찍는 장소가 멀리 시야에 들어온다.

 

   *제주올레 5코스는 남원포구에서 쇠소깍 까지 13.4km 이다.

남원에서 쇠소깍 까지도 해안을 걷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길이다.

걷기시작 한지 얼마 안 돼 길가에 말리는 한치(오징어) 풍경이 이색적

으로 보였다. 바닷가 해풍에 꾸둑꾸둑 말린 오징어를 아주머니가 구어서

팔고 있다. 걸어가던 발길을 돌려 6마리를 샀다.

5마리는 집으로 가져가게 포장을 해 주신다. 1마리는 구어서 종이 봉지에

담아준다. 오늘은 오징어를 씹으며 5코스를 걸었다.

울창한 한반도 모양의 숲길 큰엉길에 핀 수국 꽃이 화려하고 동백꽃군락지 가 있다.

동백꽃군락지에는 올레5코스 중간 스탬프가 있고 주변에 유난히도 동백나무가 많았다.

 

현기영 작가의 자전적 소설에는 동백꽃 으로 어린시절 4.3 사건을 떠 올리고 있다.

제주 출신 강요배 화가의 작품. 슬프고 처참했던 당시의 상황을 섬세하고 생생하게

재현했다. 동백꽃은 제주 4.3 사건의 상징이 되었다.

1948년 사건이 일어나고 2018년은 70주년 이었고 동백꽃 배지가 70주년 기념물 이었다.

동백꽃 배지 달기캠페인이 제주에서 전국으로 번졌었다.

나도 기억이 난다 서호동 월드컵경기장 앞에 살 때 동백꽃 배지를 받아 달았다.

인천 집 거실 장에 빨간 동백꽃 배지가 보관 돼 있다.

 

한 할머니의 땀이 서린 땅 17살에 시집온 현맹춘(1858~1933) 할머니.

어렵게 마련한 황무지의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해 한라산의 동백 씨앗 한

섬을 따다가 심어 기름진 땅과 울창한 숲을 일구었다.“ (간세 이정표 글귀)

카페 서연의집에서 커피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영화 속에 주인공처럼 지난 세월 되돌릴 필요도 없다 창밖으로 그림처럼

나타나는 한 폭에 명화를 보면서 향기가 그윽한 커피를 마셔 보았다.

카페 서연의집 그리고 망장포를 지나 쇠소깍에 도착 하였다.

제주 동백꽃 명소
동백동산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21
메이즈랜드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 2134-47
카멜리아힐 서귀포시 안덕면 병악로 166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중앙로 300번길15
동백마을 서귀포시 남원읍 한신로531번길 22-1

 

   *제주 올레 6코스는 쇠소깍에서 제주올레 여행자 센타까지는 11km 이다.

이번 코스에는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가 있다. 폭포가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는 동양에서

유일하게 정방폭포 하나로 알고 있다. 옛날부터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 열 군데를

영주십경 이라고 하였다. (”영주는 제주의 옛 이름) 영주 십경 중 4번째 4경이 정방폭포

이다. 여름에 떨어지는 정방폭포는 비경이다. 근처에 소정방폭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폭포수를 맞고 있다. 신경통에 좋다고 한다. 지리산 수락폭포 역시 폭포를 맞는다고 한다.

소정방폭포 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폭포를 맞아 보았다. 쏟아지는 압력이 대단하지만 시원하게

머리부터 물 안마를 받은 일이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4.3 사건은 예외가 아니었다.

정방폭포는 산남 지역 최대 학살터로 알려졌다. 산남 지역 곳곳에서 잡혀 온 양민들은

정방폭포 주변에서 수시로 처형 되었다고 한다. 총에 맞거나 죽창에 찔린 이들은 폭포수와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졌단다. 반세기전 제주는 정녕 사람이 아닌 야만의 섬 이였나 보다

지난날 가슴 아픈 세월을 잊은 듯 정방폭포는 아름다운 비경만을 보여 주고 있다.

 

제재기오름 과 섶섬 보목포구가 6월이면 자리돔축제가 열린다.

보목포구에서 잡히는 자리돔은 세꼬시 물회를 먹는데는 뼈가 연해서 좋다고 한다. 모슬포에서 잡히는 자리돔은 세꼬시 물회는 뼈가 억세다는 말이 있다. 서너 차례 보목포구에서 세꼬시 물회를 먹어 봤지만 모슬포 자리돔 세꼬시 물회 하고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시원하게 먹어서 좋았다. 서귀포항 새연교 새섬이다. 몇 차례 갈 때 마다 조미미의 서귀포를 아시나요.“ 구성지게 새섬 에 울려 퍼지곤 했다. 새섬 뒤에 문섬이 서귀포 앞바다에 군림 하고 있다.

 

   *올레6코스 중간스탬프 지점 소라의 성 카페가 올레길의 쉼표 역할을 한다.

잠깐 쉬며 아메리카노 한잔의 향기를 음미하며 조용히 귀를 기우려보자.

소 정방폭포에서 쏟아지는 소낙비와도 같은 소리가 소라에서 들리는 바닷가의

파도 소리처럼 은은히 들릴 것이다. 다시 걷기 시작해 자구리 문화예술공원

화가 이중섭을 만나고 이중섭 거리에 들어섰다.

1935년 고교 졸업후 일본으로 유학 도쿄 출신의 미술학교 후배 마사코 마나 연애

19455월 함경남도 원산에서 결혼식 6.25 전쟁후 가족과 부산으로 피난

이중섭은 19569월 병상에서 40세로 죽음을 맞는다.

 

천지연폭포 천지연은 하늘과 땅이 만나 이루어낸 연못이라고 한다.

폭포높이 22m에 아래 연못의 깊이가 20m로 하늘과 땅이 만나는

연못이다. 야간의 풍경이 천지연폭포의 모습이 장관이다.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을 돌아보고 종착지 제주올레여행자 센타에 도착 했다.

 

   *제주올레 7코스는 제주올레여행자센타에서 월평포구까지 17.6km 이다.

칠십리사공원 둘러 삼매봉 정상을 거쳐 외돌개을 향하는 길목에 황우지 선녀탕.

간세가 돔베낭길 이라고 알려준다. 외돌개 전망대 길가에서 오메기떡 이나 귤을

팔던 아주머니가 여러 차례 출출한 시장기를 달래 주었다. 그 후에 기대하고

가면 보이지 않아 오메기떡 과 함께 기다려지던 아주머니 였다.

법환포구에 도착하면 점심때가 되면 소낭집 코다리찜매콤한 맛이 생각난다.

몇 차례 땀을 흘리며 콧물 훌쩍대면 먹었다.

법환포구 에는 범섬이 있다. 범 섬은 최영 장군이 몽골군을 섬멸한 곳이다.

 

백제와 신라에 조공을 바치면서도 오랜 세월 독립을 유지해 온 탐라국은

서기 1105년 탐라군으로 격하되며 고려에 편입됐다.

평화롭던 제주가 외지인들의 지배로 고통을 받게 되는 시작점이다.

천혜 요새 강화섬 빼고는 고려 무신정권이 몽골의 침입으로 몽골군 발 발굽에

짓밟히고 유린되었다. 고려가 원나라의 속국으로 되어 버렸다.

제주는 몽골의 100년 핏박을 받았다.

설문대할망이 섬을 만들고 고양부 3씨가 섬의 역사를 시작한 이래,

외부 세력에 의해 섬이 전쟁터가 된 것 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100년 후 섬 전체 인구의 절반이 희생되는 무시무시한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난다.

제주는 100년간 원 제국의 14개 목마장 중 하나로 운영되며 수탈당했다.

원 나라의 목호 세력을 고려 공민왕은 최영을 사령관으로 하는 목호토벌대를

제주로 보냈다. 전함 314척 군사 25.600명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목호들은

토벌대의 칼날에 죽어갔다. 살아남은 일부와 지휘부는 범섬 으로 숨어들었다.

범섬을 포위한 고려군 전선 수십 척 앞에서 범섬 절벽 아래로 떨어져 자결 한다.

최영 장군은 목호의 난 평정 14년뒤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의 칼날에 목을

내주며 죽음을 맞는다. 1392년 조선의 개국으로 고려는 막을 내린다.

올레요 7쉼터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강정천을 지나 월평포구에 도착했다.

종착지 월평 아왜낭목쉼터 에 도착 했다. 5시간은 걸었다.

 

   *제주올레 7-1코스는 서귀포버스터미널 에서 제주올레여행자센터 까지 15.7km 이다.

비가 오면 폭포가 쏟아지는 엉또 폭포가 고근산 자락에 있다.

20184개월을 신양리 섭지코지에서 서귀포버스터미널 앞 서호동에서 4개월을 살았다.

월드컵경기장과 이마트가 있고 롯데시네마가 있어 비 오는 날이면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지낸 적이 있었다. 해발 393.7m 의 고근산 오름을 넘어 하논 분화구.

걸매생태공원. 종착지 제주올레여행자센터를 걷는 코스이다.

“12에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엉또폭포의 웅장한 폭포를 담아 방영한 후로

여행자 들이 비 오는 날 갈 곳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귀포시 강정동, 법환동, 서호동,이 병풍처럼 둘러쌓인 고근산 이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제주에서는 쌀밥을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보리와 좁쌀을 섞은 잡곡밥이 주식 이었다. 친척집 제사에 곤밥 한 수저가 그립던 때다.

지금도 제주는 쌀이 귀한 섬이다. 옛날 제주 사람들은 흰 쌀밥을 곤밥이라 불렀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쌀농사를 할수 있는 논이 하논 이다.

제주에 유일한 논 이 하논 이었다. 곤밥 하영(많이) 먹으라.“

19012월 천주교인과 민간인의 갈등으로 노인이 하논성당에 끌려와

사망 하는 사건이 생긴다. 그해 5이재수의난을 촉발 하는 원인

거센 민란 와중에 하논 성당이 파괴 되었다.

4.3 사건 으로 하논마을이 순식간에 소각 되어 없어진 것이다.

이재수의 난과 4.3 사건이라는 제주 역사상 가장 무참하고 아팠던 두 사건을

하논은 반세기만에 연이어 겪은 것이다.

 

   *제주올레 8코스는 월평 아왜낭목 쉼터에서 대평포구 까지 19.6km이다.

제주올레 8코스는 월평 아왜낭목 쉼터에서 대평 포구 까지 19.6km 이다.

관광 측면에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서귀포-중문-안덕-대정 이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 같다. 중문에는 신라, 롯데, 하얏트, 조선호텔 등 10여개 최고급 숙박 시설이

운집된 제주의 대표 관광지 이다. 야자수길을 지나면 예래생태공원 대포포구에서 거대한

절벽이 보이는 박수기정베릿내오름에서 보는 중문 바닷가는 그림같이 아름답다.

중문 색달해수욕장을 지나 해안가에 갯각 주상절리 지금은 낙석 위험으로 올레코스가

바꾸어졌다. 아내와 두 번이나 갯각 주상절리를 보았다. 중문 주상절리의 돌기둥을 쌓아

올린 듯 인상 깊게 남는다. 베릿내오름에서 조금 내려가면 천제연폭포 나온다.

1폭포 제2폭포 위에 아치형 다리에는 천사들의 조형물이 있다.

언젠가 아득한 추억이 있다. 1983년 아내와 제주여행을 왔던 기억이 40년전 추억을

회상하게 한다. 중문 다리아래서 찍힌 아치형 다리공사를 하고 있었다. 세월은 흘러가도

그 모습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문섬. 범섬. 형제섬 송악산 절벽에서도

다양한 주상절리와 판상절리를 만나 볼 수 가 있다. 논짓물 지나 하예포구를 지나면

대평포구에 도착하자 맞은편 절벽 박수기정이 기다리고 있다.

 

   *제주올레 9코스는 대평포구에서 화순 금모래해변까지 6km 이다.

대평포구 에서 출발하면 박수기정 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암벽 조형물 같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거대한 조형물 같은 박수기정 이다. 그리고 하얀 건물 피자집.

대평포구에서 몰질을 따라 숲으로 오르면 박수기정은 사라지고 거대한 산방산 이

나온다. 숲길에서 본 일본군 진지는 여러 곳에서 볼 수가 있었다.

군산오름 정상에 올레9코스 중간스탬프가 있어 정상을 밟게 되었다. 일본군이 쓰던 진지가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세계2차대전 일본군의 잔혹성이 제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군산오름을 내려오면 화순 금모래 해변 종착점이 되었다.

 

   *제주올레 10코스 화순 금모래해변에서 모슬포 하모 체육공원 까지 15.6km 이다.

화순 금모래해변을 출발 금모래 족탕이 보였다. 화순 곶자왈 탐방로 바닷가에 파도가 모래사장을 깨끗이 정리하며 철석 댄다. 모래 위에 하트 2개와 이름석자를 적어 놓고 발길을 옮겼다. 홍선화 화순곶자왈을 지나 용머리해안 언덕위에 하멜기념관 하멜이 타고온 배를 지나 용머리해안을 돌아 사계해변에 도착 사진을 찍는 인파들로 법석 댔다.

음식점들이 모여 있어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생선찌개(우럭)로 시장기를 해결 했다.

산방산을 배경으로 형제섬을 배경으로 사계해변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박았다.

형제해안로를 걸어서 송악산에 들어섰다. 여러차례 둘러보아도 멋진 곳이다.송악산 돈카스도 맛있다고 한다. 언젠가 먹어본 기억이 난다.

일본군 진지가 유난히도 많은 곳 같다. 일본군 1945년 봄 궁지에 몰리자 송악산 동굴 진지에

배치하려던 1인승 자폭 어뢰의 이름 가이텐배치를 추진했지만 일본이 항복을 하는 바람에

무위로 끝났다. 올레 간세가 평화의 구간이라고 한다. 도착한 곳은 섯알오름 정상 일본

고사포 진지 포상이 그 때의 참상을 말한다. 저 아래 태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4.3 희생자 지역 유적지 예비 검속 섯알오름 학살터사진과 묘비가 있었다.

19506.25 전쟁발발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가 예비 검속으로 전국적으로 30만명을 수감

제주에서도 4.3사건으로 양민을 학살 했다. 올레10코스 섯알오름은 대표적 학살터로 악명이 높았다. 가슴 아픈 만행이 저질러 진 곳이었다.

올레10코스 중간 스탬프 지점 섯알오름 이었다. 주변에는 일본군 비행기 격락고가 여기저기

모습을 들어내고 있었다. 벌판위에 하얀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봉평에 메밀꽃 소금을 뿌려 놓 것과도 같았다는 메밀꽃 같았다. 죽임을 당한 영령들의

혼이라도 달래듯 하얀 꽃바람에 고개를 저어 가듯 이리저리 흔들린다.

가까이 가서 보니 무꽃 이었다. 무꽃을 뒤로 하고 모슬포여객 선착장에 도착 했다.

가파도(10-1) 와 마라도 여객선 터미널 이다. 얼마를 걸어 모슬포항에 들어섰다.

겨울이면 방어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해마다 겨울에는 방어 먹으러 오는 곳이라 선착가가

익숙하다 모슬포 하모 체육공원에서 10코스를 마무리 했다.

 

   *제주올레 10-1코스 가파도 4.2km입니다.

가파도는 제주의 여러 섬 중에 우도와 추자도와 같이 올레길이 있는 섬이다.

모슬포 운진항에서 15분이면 올 수 있는 가까운 섬이다. 가파도 하면 청보리밭이다.

나도 가파도는 올레길 걸으러 3번 왔었다. 2022년 올 봄 3월중순경에 유채꽃과 청보리밭

구경을 하려고 다녀왔다. 노란 물결이 지금도 흔들리는 것만 같은 환상에 빠진다.

푸른 청보리 물결도 그림 속에 명화와 같았다. 평지가 드넓은 가파도 땅이다.

가파도에서 마라도는 5km를 두고 인접해 있어 가파도를 다녀 온 여행객 들은 마라도를

돌아보게 돼 있다. 톳자장면 과 해물짬뽕이 마라도의 상징처럼 되었다.

이창명자장면 시키신 분?“ 한 때 유명 했던 광고 였다.

가파도는 1~2 시간이면 섬을 걸을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제주올레 11코스는 모슬포 하모체육공원에서 무릉외갓집까지 17.3km 이다.

하모체육공원에서 걷다보면 대정지역 4.3 위령비와 함께 문형순 서장의 공덕비를

만날 수 있다. 올레코스에서 200m 벗어난 진개동산에 있다.

문 서장의 의로운 행적은 6.25전쟁 직후의 예비 검속자들에 대한 총살 명령 거부

1948년 겨울 초토화 작전 당시 하모리 주민 100여명의 희생을 막은 사례로 유명하다.

평안도 출신 문서장은 그 외에도 섬사람 수백 명 목숨을 살렸다.

경찰에서 퇴직후 196670세로 후손 없이 숨을 거두셨다.

모슬봉 정상에서 올레11코스 중간 스탬프를 찍고 모슬봉을 내려가면 성당을 지나쳐

정난주 마리아 성지가 나온다.

한국 천주교는 최초의 대대적 박해 사건, 1801(순조1) 신유박해로 신부와 교인

100여명 처형되고 400여명이 유배 되었다. 이 사건으로 다산 정약용 집안까지 풍비박산

황사영은 능지처참 당하고 아내와 딸 정난주 섬으로 유배 되었다.

갓난 아기와 함께 제주로 유배된 정난주는 평생을 관의 노비로 살았다.

신앙을 위하여 외세를 끌어 들이려 했던 대역죄인 황사영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배길에 잠시들른 추자도 해안가에 두 살 난 아들을 남몰래 두고 떠났다.

정난주는 평생을 관노비로 살다가 66세에 생을 마쳤다.

천주교 대정 성지에 정난주 마리아 묘가 있다.

명문가의 장녀로 태어나 천민 관노비로 살다 숨을 거둔 정난주 마리아.

한양 할망 정난주는 제주에서 최초 천주교인 이었다. 그 후 두 번째 제주에

천주교인은 김대건 신부였다. 정난주 성지를 지나 신평 사거리에 도착 했다.

작은아버지 딸이면 사촌동생이다. 사촌동생 부부가 이곳에서 한라봉. 천혜향.

농원을 하고 있다. 영포농원 서울생활에서 정년 후 매제 고향 제주로 귀향

해서 노후생활을 하는 농원이다. 조금 지나자 신평 곶자왈 이다. 교래 곶자왈

못지않게 길고 좋다. 한참을 걸어서야 곶자왈이 끝이 났다.

고래머들을 지나 인향동마을회관을 지나. 무릉 외갓집 종착지에 5시간을 걸어

도착했다.

 

   *제주올레 12코스는 무릉 외갓집에서 용수까지 17.5km이다.

제주올레 12코스는 무릉 외갓집에서 용수까지 17.5km 이다.

무릉 외갓집을 출발 해서 5 km 걸어 만난 오름이 녹남봉 오름이다.

녹남봉 옆에 산경도예 12코스 중간스탬프를 찍고 노을과 어울림 카페에서

운영하는 원룸을 얻어 5년전 정착을 할까도 했던 지역이다.

낚시를 즐기며 휴양하는 사람들이 많이 머무르기도 했다.

수월봉에 도착하기 전 이지역마을 에서 재배하는 비트를 그 때부터

아직도 비트즙을 주문해 먹고 있다. 신도포구 수월봉 차귀도 당산봉을

거친뒤 한경면 용수리 에서 끝난다.

제주에 가면 가끔 가는 곳 중에 한 곳이 한경면 이다.

당산봉오름과 수월봉 지질공원 차귀도 역시 관광으로 너무 좋다.

 

차귀도에 대해 알아보자.

제주도의 여러 섬 중에서도 그 자태가 빼어난 차귀도는 손에 잡힐 듯

바다에 잠긴 모습이 주는 당당함이 보는 이의 넋을 놓게 하는 곳으로,

옛날 호종단이라는 중국 사람이 장차 중국에 대항할 형상을 지녔다하여

이 섬의 지맥과 수맥을 끊어 놓고 돌아가려 하는데 갑자기 한라산신이 날신

매가 되어 날아와서 이들이 탄 배를 침몰시켰다고 해서 차귀도라는

이름이 전해 오고 있다.

본 섬이 죽도와 오돌 지실섬으로 이루어진 차귀도는 섬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특히, 해질 무렵 노을이 지는 순간 바다와 섬과 석양이 연출하는 장관이 더욱

유명해서 그 장엄함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늘 이어진다.

또한 전국적인 낚시터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어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천주교 6대 성지순례길
1,김대건 길 11.5km 고산성당-수월봉 지질공원-김대건신부 표착지용수성지-신창성당
2,하논 성당길 10.6km 서귀포성당-하논성당터와 홍로성당이었던 면형의집 거쳐-서귀포성당 귀착.
3,김기량길 9.3km 조천해안을따라 -조천포구-신흥포구-함덕포구-연북정 환해장성 등의 유적을 만나는길.
4,정난주길 13.8km 정난주묘역-대정현성의성당-추사유배지-이재수등3인의대정삼의사비-모슬포성당.
5.신축화해길 12.6km 황사평공원묘지-정난주도착화북포구-4.3사건사라진 곤을동마을-별도봉.사라봉-중앙주교좌성당.
6,이시돌길 (3개코스) 33.2km 1코스)이시돌센터-수녀원-새미소-녹원목장-밝은오름-정물오름-이시돌센터 (9.4km)
2코스)이시돌센터-수녀원-금오름-4.3잃어버린마을상명리-월림리사무소-운동장-저지삼거리에서조수공소(11.8km)
3코스)조수공소-바람에언덕-청수공소-낙천의자공원-고산리입구-고산성당.(12km)

   *제주올레 13코스는 용수에서 저지리까지 15.9km 이다.

용수포구를 출발해 절부암 그리고 용수저수지에서 1.7km 지나자 특전사숲길.

고사리숲길에서 2km 가서 만나는 낙천의자공원 이다. 가지각색의 의자가 있다.

그 중에서도 해적선 에서나 볼 것 같은 해골의자가 인상 깊다. 이번 4월에 갔더니

낙천리 잣길 전망대가 새롭게 설치돼 있었다. 올레 13코스 중간 스탬프가 있다.

제주 삼다도 하면 돌과 바람과 여자. 언제부턴가 제주의 특정지어 온 단어지만

여자가 많다고 하는데는 왜 많을까 하는 의문과 궁금하기도 하다.

척박한 땅에서 굶지 않으려면 고기잡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여자는

밭에서 일하고 남자는 바다에서 분업이 이루어졌다. 허술한 배와 원시적 방법에 의존해

바람 많은 바다로 나가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폭풍과 풍랑에 목숨을 잃었을까?

4.3 사건 때 남자가 여자보다 많이 희생 됐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해방 전부터 제주에는

여자가 많다고 했다.” 한경면용수리에는 절부암에 담긴 설화가 있다.

용수리 마을에 고씨 처녀와 강씨 총각이 살았다.

둘 다 조실부모하고 서로 사랑하며 착하고 부지런 하게 살았다.

농사도 열심히 하였지만 겨울에는 일이 없어 차귀도 에서 테우(조그만 통나무배)

대나무를 베어다 바구니를 만들어 팔기도 하며 살았다.

어느날 강풍에 태풍을 만나 삽시간에 배를 덮쳤다. 남편 강씨는 바다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부인 고씨는 차귀도에서 수월봉 까지 바다를 몇날몇일을 찾아 헤맸다.

남편의 시신이라도 찾으러 다녔지만 허사 였다.

그러던 어느날 용수포구 앞 언덕 위에서 발견 되었다. 단정한 소복차림으로 큰 나무에 목을

매단 채였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한숨지으며 고이 장례를 치러 주었다. 3일장이 끝나던 날

남편 강씨 시신이 뭍에 떠올랐다. 아내가 목을 맸던 바로 그 언덕 아래에서였다.

뒷동산 아리랑길에서 1km 걸어서 저지오름 입구에 도착했다.

4월에는 저지오름에서 고사리를 꺾어 말렸다. 숲 전국대회 대상(생명상) 저지오름

저지예술정보화마을 저지리에 도착했다.

 

   *제주올레 14코스는 저지리 에서 한림항 까지 19.1km 이다.

저지예술정보화마을 출발 했다 이지점은 14코스와 14-1코스가 출발점이 같다.

큰소낭 숲길까지 2.5km 가서 무명천산책길까지 4km 걸었다. 무명천할머니삶터

그리고 선인장 마을 월령선인장자생지 올레 14코스 중간스탬프가 있다.

선인장 식당이 올레길옆에 자리하고 있다. 천하장사 강호동이 돈카스를 판매한 뒤로

여행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3번이나 돈카스를 먹어 보았다. 길을 걷다 때가

돼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무명천할머니 얼굴에 흉터와 상처로 평생을 무명천으로 감싸고 살다 91세 나이로

결혼도 안하고 늘 혼자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싸고 살다20049월 세상을 떠난

진아영할머니다. 19491월은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지 5개월 되던 때

4.3 사건이 일어난 지 10개월째 제주 섬에는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초토화작전은 무시무시했다. 해안가에서 벗어난 중산간 마을 사람들은 무조건 해안

쪽으로 다 내려와라 안 내려오면 누구든 보이는 대로 이유 불문 사살 하겠다, 는 포고문

엄포가 아니었다. 당시 35살 아영이는 총탄에 턱이 날아가고 빨갱이로 몰려 병원치료나

약 한봉지도 써 볼 수도 없었단다.

비양도가 보이는 금능 해수욕장이 있고 맞은편에 한림공원에서 튜립축제가

한창 이란다. 2~3월 한림공원은 수선화와 매화로 꽃동산을 이룬다.

협재해수욕장 비단 물결이 아름답다. 비양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수우동음식점 예약제로 운영되고 음식도 예약 음식외에 추가로 음식은

안 된다고 한다. 일전에 예약을 해서 먹어 봤지만 우리 입맛에는 예약까지

하며 다시 가고 싶단 생각은 안든다.

작년에 한림은 가수 양지은 고향이다. 한림초교 한림여중. 한림농협 등에서

“TV조선 미스트롯 등극 축하 현수막이 여기저기 대단 했었다.

제주에서 한림항은 큰 항구였다. 비양도 가는 선착장에서 14코스가 끝났다.

 

   *제주올레 14-1코스는 저지리에서 서광(오설록)까지 9.3km 이다.

저지예술정보마을에서 출발을 해서 마중오름을 지나 저지곶자왈 까지 왔다.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작년 어느 날도 아내와 14-1코스를 걸었다. 곶자왈 길가에

무엇인가 흙을 파헤친 모습이 계속 보였다. 앞서가던 아내가 비명소리를 냈다.

달려갔더니 숲속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내는 큰 바위덩어리 만큼

큰 하얀 돼지를 보았다고 한다. 꿀꿀 대며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하는데

믿기지가 않았다. 잘못 본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정말 보았다고 했다.

저지 곶자왈을 빠져나와 자원봉사 하는 분께 하얀 돼지 이야기를 했더니...

하얀 돼지 봤냐고 하며 저지리 곶자왈 부근에서 키우던 하얀 돼지가 곶자왈 숲속

으로 숨어들어 관광객이 가끔씩 돼지와 마주쳐 놀라고 했단다.

아내가 곶자왈에서 본 하얀 돼지가 정말 있다는 것을 아내도 놀랐을 거라고 생각 되었다.

문도지 오름 정상에서는 우리부부와 처제부부가 같이 사진 찍었던 곳이다.

문도지오름을 지나면 오설록 차밭이다. 올레 14-1 종착점에 왔다. 중산간 길을 걷는 코스다.

안덕면 동광리 도너리오름은 아내와 오름을 찾아 정상에서 컵라면의 진가를 맛 본 곳이다.

정상 분화구가 깊이 파인 멋진 오름이라고 생각 했다. 산책길이 제대로 안돼 힘들게

올라갔던 오름이다.

2018216일 남송이오름을 갔다 옆에 보이는 도너리오름 까지 갔었다.

도너리오름 기슭에 큰 넓게라는 동굴이 있다. 입구는 좁고 안에는 넓어 많은 사람이 숨어들어 120여명

주민이 두달 가까이 짐승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은 토벌대에 발각돼 대부분 총살 되어 죽었다.

그 들이 살았던 터전도 불태워지고 폐허로 변했다. 큰 넓게 4.3 유적지볏바른궤 4.3 유적지가 있다.

곶자왈 돌담을 쌓아 토벌대를 피해 숨어 살았던 유적이 남아 있다. 지난날 아름다운 곳에 가슴 아픈 사연아 숨어 있다.

 

   *제주올레 15코스는 해안코스내륙코스(A) (B)로 나누어져 있다.

한림항 에서 고내포구로 내륙(A) 16.5km 해안(B) 13km 이다.

한림 항(비양도 선착장)에서 시작해 영새생물을 지나 선운정사을 지나 금산공원 이곳은

곶자왈 이다. 과오름 둘레길을 걷고 도새기숲길 그리고 고내봉 오름이다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서면 한림 전역과 푸른 바다가 우리를 부른다.

해안코스는 한림항을 출발 한수풀 해녀학교 귀덕1리어촌계 지나면 애월 곽지 해수욕장

과 젊음이 살아 숨쉬는 카페 부락이 형성 돼 있다. 한담해안 산책로 인파가 많은 지역이다.

애월카페촌, 애월초교, 민물습지, 고내포구로 마침표를 찍는다.

애월 곶자왈 지대는 한라산과 가장 가까운 위치이며 고도가 가장 높다.

해발 800m가 넘는 노꼬메 오름에서 발원하여 애월읍 납읍의 난대림

지대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용천수는 제주도 남부 북부의 지리적 차이와도

연관이 있다.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엉또폭포 까지 제주 4

폭포 이야기지만 정방폭포 바로 옆에 소정방폭포, 와 중산간 돈네코 지역의

조그만 원앙폭포 등이 사랑을 받고 있는데 모두가 서귀포에 있다.

귀덕리 영등할망은 고기잡이 어부와 해녀들을 바다 재앙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제주 백성의 수호신 이다.

 

   *제주올레 16코스는 고내포구에서 광령1사무소 까지 15.8km 이다.

고내포구에서 출발해 신엄포구를 지나 구엄 어촌체험마을 돌염전 소금밭이 이색적이다.

수산봉 오름 정상에 마련된 깨끗한 정자에서 점심을 먹은 자리다. 수산봉 옆

저수지에는 물이 호수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정상에서 내려오다 보면 저수지가

보이는 언덕에 그네를 매어 놓았다. 아내와 그네를 즐기고 다시 걸었다.

길가에는 시를 적은 돌비석이 즐비하다. 초겨울이면 귤들이 노랗게 물들여 아름다운

동네다. 201712월 강씨 95세 할머니를 만났다. 아내와 지나가는 우릴 불러

배낭에 귤을 가득 채워준 할머니다. 20219월 할머니를 찾아 뵈웠다.

건강하셨다. 올해 99세란다. 건강 하실거라 믿는다. 그 후에 아내와 찾아뵙는데

집에 안 계셔 못 뵙고 왔다. 우리 어머니와 같은 분이시다.

항파두리 항목유적지를 지나 휴게소에 16코스 중간스탬프가 있다.

광령초교를 지나 광령1리사무소에 도착 종착지에 왔다.

 

제주에는 메밀의 유래가 있다. “자청비라는 여신에 얽힌 설화가 있다.

늦도록 자식이 없어 상심하던 김진국 대감 부부는 부처님께 불공을 들여 겨우 딸

하나를 얻었다. 이 여자 아이 자청비는 천방지축 왈가닥으로 남자 아이로 자랐다.

옥황상제 아들 문도령을 만나 남장을 하고 3년간 글공부를 같이하고 헤여질 때

여자임을 밝히고 깜짝 놀란 문도령은 결혼을 기약 했다. 하늘나라에서 잘 살다

친정나들이 하러 육지로 내려 올 때 5가지 곡식을 가져와 친정집 밭에 뿌리다보니

한가지가 빠진 것을 알고 하늘나라에 가서 빠뜨린 한 가지 곡식을 가져다 늦게

촉박한 땅에 뿌린 곡식이 메밀 이라고 한다.

 

애월 다락쉼터에는 쉼터 벤취와 최영 장군과 김통정 장군상이 서있다.

몽골에 맞서 싸운 두 장군 애월 바다에서몽골을 맞서 싸운 사별초의 수장 이었다.

 

    *제주올레 17코스는 광령1리사무소에서 제주 원도심 (동문시장) 까지 18.1km이다.

광령1리사무소를 출발 무수천 트멍길 지나 외도포구에 왔다. 20171월 외도포구에서

펄쩍 뛰는 살아있는 고등어회를 생전 처음으로 먹어본 곳이다.

이호태우 해변 빨간말 하얀말이 있는곳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속을 걸었던 바닷가다.

도두봉 오름 정상 벤취에 앉아서 바라보는 이호태우 해변 멀리 해녀 할망들의 물질이

힘들어 보인다. 갑자기 뒤편에서 괴음을 쏟아내며 솓아 오르는 비행기에 태극마크가

선명하게 보이묘 구름 속을 박 차고 오른다.

공항 올레 종점을 지나 어영소공원 올레 17코스 중간스탬프 지점이다.

용두암 오래전 아내와 제주 여행중 숙소가 용두암 옆이었다. 그러나 흔적도 없다.

많은 세월이 흘렀나 보다 여러번 왔지만 용두암은 변함이 없다.

용연구름다리를 건너 시내로 접어들면서 관덕정에 도착한다.

 

관덕정알아보고 가자.

관덕정(觀德亭)1448(세종 30) 목사 신숙청(辛淑晴)이 군사들의 훈련청으로

창건한 제주도의 대표적 건물의 하나로, 1480(성종 11)에 목사 양찬(梁讚)

중수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으며, 1969년에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관덕(觀德)’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

所以觀盛德也,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에서 따온 말로,

평소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누정은 정면 5, 측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건물이며, 창호와 벽체를 가설하지

않고 사방이 모두 개방되었다. 장대석을 바른층쌓기한 2중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26개의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는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창방 아래

인방을 바로 짜올렸다.

공포는 평방(平枋) 없이 기둥 위에 바로 짜올렸는데 쇠서 2개를 둔 이익공식

(二翼工式)이며, 기둥 사이에는 화반(花盤: 주심도리 밑 장혀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

을 세 개씩 두었는데 이 화반 위에 운공(雲工)을 보[] 방향으로 놓아 외일출목도리

(外一出目道里)를 직접 받치고 있다.

바닥의 전면 1칸 폭은 마루를 깔지 않고 2중 기단의 바닥으로 하고, 후면 3칸 폭에만

우물마루를 깔았다. 누정 안에는 앞뒤 일렬로 네 개씩 높은 기둥[高柱]을 세워

대들보[大樑]를 걸고 동자주(童子柱: 세로 세운 짧은 받침)를 세워 종보[宗樑]

받쳤으며, 다시 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쳤다.

이들 대공들은 도리 밑의 장혀[長舌]와 나란하게 놓인 뜬창방으로 연결되었는데,

이러한 가구 수법은 누정 건축에 흔히 있는 것이다. 건물 내부의 포벽(包壁)에는 건립

당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7폭의 벽화가 남아 있다.

 

관덕정 앞은 섬사람의 민의가 모이는 중심 현장 이다.

4.3 사건 또한 비슷하다. 광장에서 시작 됐고 광장에서 일단락 됐다.

해방이 되고 작년에 몰아친 대흉작 여파로 극도로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학교운동장에서 3.1절 행사를 마친 사람들은 관덕정 앞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무엇이든 붙들고 하소연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위 행렬 인근을 지나던 기마경찰의 말굽에 어린이 1명이 치이며

쓸어졌다. 어쩐 일인지 기마경찰은 쓰러진 어린이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채 인근 경찰서 쪽으로 가 버렸다. 격분한 시위대 사람들은 경찰을 쫓아가

항의를 하며 돌을 던졌다. 한 동안 소란이 일던 순간에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사망했다.

이날의 돌발사건이 오랜 시간 제주 섬을 피로 물들이는 불씨가 될 줄 상상도

못 했다.(194731)

194843일 사건이 일어났다.

관덕정에 이덕구의 시신이 걸렸다. 폭도의 우두머리 또는 산사람의 대장으로

불렸던 이덕구가 죽음으로 제주 섬에는 슬픈 평화가 찾아왔다.

관덕정에서 올레 간세라운지에 도착하며 17코스를 마쳤다.

 

제주올레 18코스는 제주 원도심 에서 조천 만세동산까지 19.8km 이다.

원도심 간세라운지를 출발해서 김만덕 객주에 도착 했다. 막걸리한잔 생각이 나며

김만덕에 알아보고 가야겠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제주도 출신으로 기녀 신분에서 상업을 통해 거상이 되었다.

제주도에 흉년이 들자, 1795(정조 19)에 자신의 전 재산으로 육지의 곡식을 구매하여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이에 대한 상으로 정조는 출륙(出陸)하여 금강산을 관람하고

싶다는 김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아버지 김응렬(金應悅)과 어머니 고씨와의 사이에 21녀로 북제주군 구좌읍 동복리

(지금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서 태어났다. 오빠 김만석(金萬碩)과 김만재(金萬才)가 있다.

아버지 김응렬은 전라도 나주와 제주를 오가며 제주의 미역·전복·귤 등을 팔고, 육지의

쌀을 제주에 가지고 와서 파는 상인이었다. 김응렬은 김만덕이 11세 되던 해에 나주에서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사망하였고, 이듬해에 어머니도 그 충격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외삼촌 집에서 살았던 김만덕은 퇴기 월중선(月中仙)에게서 성장하게 되며 어린

나이에 기적에 오르게 되었다. 그녀가 20살 되었을 때 관아에 가서 양인의 신분을 회복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제주 목사 신광익(新光翼)과 판관 한유추(韓有樞)

를 찾아가 부모를 잃고 가난으로 부득이 기녀가 된 사정과 양인으로 환속시켜줄 것을

요청하였다. 김만덕은 재물을 모으는데 능하여서 상인으로 활동하며 많은 재산을 축적하였다.

그녀는 배를 만들어 육지와 미곡을 무역했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이득을 취하였다.

이는 물가의 변동을 잘 파악하여 적절한 시기에 물건을 사고팔았던 상인으로서의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만덕은 1790(정조 14)부터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제주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자,

재산을 내놓아 배를 마련하고 육지에서 곡물을 사들여 구호곡(救護穀)으로 쓰게 하였다.

이러한 선행은 1796(정조 20) 조정에 보고되었다. 정조는 그녀에게 면천(免賤)시키는

것으로 상을 주려고 하였으나, 김만덕은 이를 사양한 후 바다를 건너 상경하여 금강산을

유람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구휼에 대한 상으로 정조의 허락을 받은 그녀는 제주 여인

으로는 예외적으로 육지로 나와 한양에 머무르고, 금강산을 유람한 후제주도로

돌아갔다. 1812(순조 12)에 사망하였다.

제주연안여객터미널과 국제여객터미널 있다. 20183월 추자도 올레18-1코스를

들어 갈 때는 바람이 불어 오전배는 결항이 되고 오후 국제터미널에서 들어가는 배를

타고 들어갔던 일이 있다. 여객터미널을 지나 사라봉 그리고 옆에 별도봉 오름을 향

했다. 사라봉에서 내려다보이는 여객터미널이 한눈에 들어온다.

큰 여객선 들 틈에 자그마하게 보이는 여객선이 눈에 들어온다.

동양고속 카페리호다. 1983년 여름 벌써 40여년전 아내와 제주에서 부산까지

타고 나온 카페리호가 분명했다. 그 땐 무척 큰 배였는데 작아 보였다.

곤을동 표지석이 지난날의 마을자리를 알려주고 있다. 4.3 사건 으로 사라진 마을

이란다. 가슴 아픈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지나치고 있다.

화북포구 군데군데 환해장성 흔적들이 있다. 삼양해수욕장 검은모래 해수욕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다시 오름으로 가는 길 원당사 사찰을 지나 원당봉을 넘어 닭모루

지나 조천 비석거리 제주에는 비석거리가 많았다. 18코스 끝 무렵 이덕구 고향을

지나게 된다. 관덕정에서 죽엄을 당한 그의 나이는 29세 였다. 주변에 이덕구 가족

에묘가 있으며 그곳에 묻혀 있다고 한다. 조천 만세동산에 도착하면서 18코스를 마쳤다.

 

   *제주올레 18-1코스는 추자도 이며 18km 이다.

추자도는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을 타고 들어갔다. “한일 레드펄호 에 몸을 실었다.

상추자항에서 올레길을 시작 했다. 제주도에는 최영 장군의 흔적이 많았다.

최영장군 사당이 추자도에 있었다. 최영 장군이 추자도에 어부들에게 그물로 조기를

많이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 어부들이 조기를 많이 잡았다고 한다.

봉글레산 정상에서 보는 추자도는 그림같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어미의 눈물(눈물의 십자가) 정난주 아들 황경한의 묘가 봉글레 산에 있다.

 

마리아 정난주정경한에 대해서 알아보자.

황경한은 '황사영 백서사건'의 주인공이다.

이 사건은 1801년 천주교 박해사건이었던 신유박해의 원인이 되었던 결과로

황사영의 아내 정난주가 제주로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정난주는 유배지에서

아들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기에 이 곳 추자도 예초리 해안가에 갓난 아기를

내려 놓고 갔다. 황경한은 조선 순조 때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옥 때 백서를

작성한 황사영(알렉시오)와 정난주(마리아) 사이에 태어났다.

황사영은 1790년 약관 16세 나이로 사마시에 진사로 급제한 인재로서 당시 명문가인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 정난주와 결혼했으나 신유사옥 때 핵심 주도자로 지목돼

1801115일 대역부도 죄를 저지른 죄인으로 분류돼 순교했다,

정난주(마리아)는 제주 대장현의 관노로 유배되던 중

당시 두 살이던 아들 황경한을 추자도 예초리 해안가에 내려두고 떠났고 예초리 주민

오씨 부인이 울고 있던 아이를 발견 데려다가 키웠다고 한다.

정난주(마리아)는 제주에서 관노로 37년간 인욕의 세월을 살면서 늘 아들을 그리워하다

1838년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은 자신의 내력을 알고 난 후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제주에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머니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황경한의 묘를 지나 눈물의 십자가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황경한의 눈물 샘터이다.

이곳은 어미를 그리워하는 아들이 애끓는 소망에 하늘이 탄복하여 내리는 황경한의

눈물로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흐르고 있다는데,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감동적이고

애뜻한 사연을 새롭게 열리는 추자 올레 길과 함께 지나가는 길손에게 감흥을 불어 넣고

있으며 지나치는 올레꾼들의 가슴을 울리며 母子의 그리움이 배여 있다.

나바론길 그리고 추자 등대을 내려와 신양항 그리고 조기 조형물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돈대산 정상을 밟자 비가 내리기 시작 한다. 상추자항으로 가는 발길은 바쁘지만 비가 오며

배가 출항을 못하면 하루 더 숙박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급하다.

길가 숲속에 두릅나무에 두릅이 솟아나고 있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두릅 맛을 보려다

가시에 몇방 찔리고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바닷물을 가르며 우릴 실은 보트형 여객선은 제주여객터미널을

향해 물보라를 일이키며 물살을 가르며 달린다.

추자도는 행정구역이 전라도에서 제주도로 편입 되었다고 한다.

 

   *제주올레 19코스는 조천 만세동산에서 김녕 서포구 까지 19.4km 이다.

조천 만세동산이 어떤 곳이나 알아보고 가자.

조천의 만세운동은 321일에서 324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1차 시위는 유림 김시우의 기일에 맞추어 일어났다. 시위자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14명의 주동자와 기일에 맞추어 제사에

참여하였던 150여 명의 유림이 태극기를 흔들었고 김필원은 혈서로 대한독립만세를

써 들었다. 대열이 미밋 동산으로 행진하자 인근 조천리, 신촌리, 함덕리의 5 - 6

명이 합세 하였다. 이 동산은 이후 만세동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시내까지 행진하려 하였으나 조천읍 신촌리에서 경찰과 충돌하였고 주동자들은

체포되었다. 다음 날인 322일 백응선 박두규는 체포된 연행자의 석방을 주장하며

만세를 주도하였고 주민 2백여명이 합세하였다. 경찰은 백은선을 체포하고 시위를

해산시켰다. 사람들은 해산을 당한 뒤에도 23일과 24일 계속하여 만세 시위를 벌였으며

인원은 더욱 늘었다. 324일은 조천읍의 장날이었고 시위자는 15백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김연배 등 시위를 주도하던 4인이 체포되면서 만세운동은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독립운동의 본거지 만세동산 이다

신흥리 백사장 그리고 아름다운 바닷가 함덕 해수욕장 지나 서우봉 오름에서 내려다

보는 함덕 서우봉 해수욕장은 계절에 관계없이 쪽빛 푸른 바다다.

해동포구 지나자 너븐송이 4.3 기념관을 돌아보았다.

움쾅밭 속에서 30년 삶, 순이삼촌, “너븐은 넓은 숭이는 자갈과 돌이 많은 거친

땅을 말한다. 일대가 학살의 현장이었다.

 

너븐숭이 43유적지는 1947.1. 17 북촌리 주민 400여명이 학살된 장소 중 한곳이다.

43의 아픔을 주제로 쓴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곳에 너븐숭이

43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을 들어서니 평화염원 펼침 터가 있다. 소원을 담은 형형색색의 쪽지가 게시되어

있다.

소설 몇 권 읽고 43을 이해하려고 했다. 아니 어쩌면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현장에 와서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잊고 산 것이 부끄럽다. 내 글을 쓰는 것 보다

기념관의 전시물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북촌리에서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죽이지 마라 죽이지 말라고 살려달라고

애원성 보다 빠른 속도로 이미

발사된 총탄은 어김없이 산목숨에 꽂혀

죽음의 길을 재촉한다

 

시체 산 피 바다

수백의 죽음 속에서

살아남은 이의 내일은

또 다른 죽음

울음도 나오지 않는

원한이 사무쳐 구천에 가득할 때

젖먹이 하나 어미 피젖 빨며

자지러지게 울고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도 모두 죽으리라

 

'젖먹이' 강요배 작

 

법 아닌 법인 줄 몰랐습니다

죄라면

좋은 세상 꿈꾸며 속솜하지 않던 죄, 맞습니다.

죄명도 기록도 모른 사람들,

풀잎처럼 이 산천 저 산 천 이송 되었습니다.

법 아닌 법 앞에서

ㆍ ㆍㆍㆍㆍㆍ

허영선

 

'제주 43사건' 이란

 

19473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 4. 3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 9. 21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사건의 발단이 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은 항쟁의 성격을 띄고 전개되었지만,

이후 토벌대의 진압과정은 집단학살이다.

 

1949117일 북촌리 주민대학살의 진상을 살펴보자.

 

발단

 

1949. 1, 17 북촌리에서 가장 비극적인 세칭 '북촌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아침 세화에 주둔하던 일부 병력이 함덕으로 이동하던 중 너븐숭이에서

무장대의 기습을 받아 2명의 군인이 숨졌다. 시신을 운구한 원로자들을 흥분한

군인들이 사살하였다.

 

너븐숭이 4.3기념관

 

전개

2개 소대의 군 병력이 전 주민을 북촌초교 운동장에 모아 놓고 온 마을을 불태웠다.

민보단 책임자를 '마을 보초를 잘 못 섰다'는 이유로 즉결처분하고 군경가족을

제외한 모든 주민을 사살했다.

 

대학살

당팟, 너븐숭이, 탯질 밭에서 주민들을 사살하기 시작했다.

주민학살극은 대대장의 중지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어지는 학살

대대장은 주민들을 함덕으로 강제 소개시켰다. 함덕으로 갔던 주민들 가운데

100명 가까이는 다시 희생되었다.

 

결말

이 사건으로 북촌마을은 후손이 끊긴 집안이 적지 않았다.

그후 북촌리 주민들은 이 사건에 대해 말을 할 수 없었다. 침묵과 금기,

왜곡의 역사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또 하나의 학살

이날 북촌리에서 집단학살극을 벌인 군인들은 옆 마을인 동북리에 들러 주민들

86명을 집단학살했다.

 

아이고 사건

6년후,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영혼들을 위한 묵념을 올리다가 설움에 복받친 주민들이

대성통곡한 것을 경찰이 문제 삼기도 했다.

 

43은 제주공동체에 엄청난 상흔을 남기고,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앓게 하였다.

이에 대한 치유는 물론이고 왜곡되고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첫 단계인 진상규명

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말 못하던 시절인 유신정권 말기(1978)에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발표되면서 북촌리 대학살에 대한 침묵의 금기는 깨어졌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4.3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일어나고, 마을 원로회를 중심으로

희생자 조사에 나선다.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2,00043특별법이 제정되고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이 시작된다.

 

 

20012월에는 43때 북천초교가 폐교되어 학업을 중단했던 주민들이 반세기가

지나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하여 제주도민과 유가족들에게 사과한다.

20064343위령제에 참석하여 분향하고 추도사를 한다.

 

그후 정부는 '너븐숭이'일대에 위령비, 기념관, 문학기념비 등을 마련하고, 유족회는

매년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2012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이곳을 방문하여 위령비에 헌화하고 묵념을 올린다.

평화와 상생의 새 역사로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

 

희생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2, 3세인 유아들의 명단도 보인다.

이름이 없이 ○○○자로 기재되어 있다.

 

43에 대한 동영상을 시청하고 기념관을 나와 너븐숭이 유적지를 시작으로 북촌마을

43길 탐방에 나선다. (2021. 11. 1)

[출처] [제주도 4.3]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작성자 금샘노을

[퍼 옴]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둘러보고 넋을 잃고 나온 것 같다.

제주의 지난 가슴 아픈 피바람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벌러진동산을 지나 김녕 농로와 백련사 지나 김녕 서포구 종착지에 도착했다.

 

제주올레 20코스는 김녕 서포구에서 하도까지 17.6km 이다.

김녕 서포구에서 출발 해서 얼마 안돼서 김녕성세기 해수욕장을 만났다.

바다는 우리에게 행복의 엔돌핀을 주는 것 같다. 만장굴이 올레길을 조금 벗어나면 있다.

만장굴 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주변에 입산봉 오름이 있다. 일명. 삿갓오름

이라고도 한다. 오름에서 금산농장을 운영하는 김두전 어르신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과 꼬마탐험대를 결성해 만장굴을 발견해 세상에 알리신 분이다.

저서 지상으로 탈출한 만장굴을 펴내셨다.

젊은 사람들이 선호 하는 월정리 해수욕장 이다. 커피숖이 애월 만큼 많은 곳이다.

행원포구에는 올레20코스 중간스탬프가 있고 바로 옆에 광해군기착비가 있다.

여기가 어디인고 ?“ ”뭣이 제주라고 !“

조선 15대왕 광해군 인조반정으로 폐위 되고 강화교동에서 유배생활 하다 제주로

유배와서 첫발을 밟은 곳이 행원포구 란다. 다시 걸어 구좌리 농공단지에 왔다.

당근을 많이 심는 동쪽 구좌리다 오름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용눈이오름, 다랑쇠오름. 안돌오름. 밧돌오름, 아부오름, 백약이오름, 등 많다.

평내포구 해수욕장과 함께 쪽빛바다로 아름다운 곳이다.

세화5일장을 구경하고 세화해수욕장 말로 표현하기가 직접와서 쪽빛 오색 바다를

보면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제주 해녀박물관 으로 막을 내렸다.

지역 밭담길
구좌읍 월정리 진빌레 밭담길 2.5km
구좌읍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1.5km
성산읍 신풍리 어멍아방밭담길 3.2km
성산읍 난산리 난미 밭담길 2.8km
애월읍 수산리 물메 밭담길 3.3km
애월읍 어음1 공세미 밭담길 3.7km
한림읍 동명리 수류촌 밭담길 3.3km
한림읍 귀덕1 영등할망밭담길 4km

 

   *제주올레 21코스는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종달바당까지 11.3km 이다.

제주해녀박물관 제주해녀들의 삶과 인생이 있는 곳 이다. 삶을 위해 파도와

싸우며 물질과 텃밭에서 농사를 지며 살아온 우리들의 어머니이며 할망들 이다.

별방진 지나 해안길에 석다원 올레21코스 중간스탬프가 있는 곳이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다시 걸었다. 토끼섬 그리고 하도 해수욕장 쪽빛 바다

물빛이 영롱하게 태양빛에 반사되여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하도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지미봉 오름이 보이는 밭길을 걸었다.

지미봉 가파른 정상을 헐떡거리며 올라섰다.

종달리항을 출발해 우도를 향하는 배가 하얀 물결을 쏟아내며 멀어진다.

소가 누어있는 것 같아 우도라고 한단다.

우측으로 성산일출봉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지미오름에서 내려와 해월정 보말죽, 보말칼국수, 알려진 맛 집이다.

몇 차례 보말죽을 먹었는데 내 입 맛이 달라졌는지 처음만 못한 것 같다.

종달리해변을 걸으며 긴 여정을 마치는 마라톤 골인지점에 도착 하는

기분이다. 제주올레 28개코스 428km를 마치는 종달바당에 들어섰다.

 

제주도를 빚어 만든 설문대 할망과 탐라국 시조 고양부 씨 혼인지 결혼식

자손이 늘어 탐라국을 세워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제주 땅 신라와 백제에게

조공을 받치면서도 탐라국은 간섭을 받지 독립적인 나라였다.

서기 1105년에 고려에 편입되면서 탐라군으로 격하되었다.

평화롭던 제주가 외지인들의 지배로 고통을 받게 되는 시작점 이다.

고려가 원나라의 속국이 되면서 고려군에 의해 몽골이 들어와 100년의

몽골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최영장군의 제주 몽골 격퇴 후 후폭풍 으로

피바람이 불었고 일본군에 짓밟히고 해방후 4.3사건으로 피바람이 일고

6.25 전쟁 때 또 한번의 학살로 만신창이 되었다.

제주 하루방 할망 들이 말하는 육지 껏에 답이 나온 것 같다.

세월의 운명앞에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아름다운 제주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길 기원 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감사합니다."

 

2022810일 택균이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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